벌거벗은 한국사, 노론이 장악한 조선 조정에 경종이 설 자리는 없었다.

 


노론이 장악한 조선 조정에 경종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반쪽짜리 왕이나 다름없었던 경종, 그렇게 기를 펴지 못하던 경종에게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이 정도면 연잉군 반정 아닌가요? 경종과 연잉군은 6살 차이가 납니다. 후계자 책봉을 강요한 신하들에게 경종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후계자 책봉에 반대하는 소론!  연잉군을 세제에 책봉하겠다는 경종.
경종은 왜 노론의 주장을 받아들인 걸까? 6살 어린 동생을 세제에 책봉하는 경종의심정은 어땠을까?

겉으로는 덤덤한 척하더라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고민하고 갈등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조여오는 노론 대신들의 압박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경종. 결국 노론의 요구대로 단 하루 만에 28살 연잉군이 세제에 책봉됩니다. 


조선에서 동생이 후계자가 되는 일이 흔한가?!
왕의 아들이나 손자가 없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까지 조선 왕조에서 동생이 왕위를 이은 경우는 태종과 명종 두번 뿐이었습니다. 



명종은 후사가 없던 인종의 유언에 딸 왕이 된 경우로 하지만 경종의 경우에는 절차를 건너뛰고 왕을 다그쳐서 만든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새벽의 쿠데타나 다름없었던 사건, 반역이나 다름없던 한밤의 날치기 인사.




경종의 권위는 그렇게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노론이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을 서두른 이유는?

그 이유는 노론의 귀에 들려온 심상치 않은 소문.




후사가 없던 경종 부부가 양자를 구한다는 소문이 돈 것. 연잉군을 왕위에 앉히려던 노론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던거죠.  한밤중 날치기 인사로 왕세제 책봉을 밀어붙인 것. 후사를 볼 가능성이 충분한 경종 부부, 왜 양자를 구한다는 소문이 퍼진 걸까?

소문의 근원은 바로 경종 즉위 19년 전입니다. 1701년 때는 장희빈이 죽음을 맞던 바로 그날, 



죽음을 앞둔 경종의 친모 장희빈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아들 경종을 보게 해달라는 그녀. 경종을 마주한 장희빈의 행동에  아연실색하는 신하들,  장희빈이 아들 경종의 아랫도리를 잡아 뜯어버린 것.




"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이씨집안의 대를 끊어 버리겠다!"  결국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돼 양자를 들일 수밖에 없던 경종.



진짜 장희빈 때문에 경종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걸까?
34살이 되도록 후사가 없었지만 따로후궁을 들이지 않았던 경종. 살아남기 위해 견뎌온 시간들이 경종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고 2달이 지난 1721년 10월 10일, 



이제는 연잉군을 국정 운영에 끼워 달라?   한마디로 왕세제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맡겨 달라는 요청.  34살의 왕이 왕좌에 멀쩡히 앉아 있는데, 대리청정을 논한다?
경종에게 왕에서 물러나라는 것과 다름없는 선언이죠.



이상한 병이 있다고 강조하며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허락한 경종, 그렇다면 경종을 지지하던 소론 대신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대리청정에 결사반대를 외친 소론,  거듭된 소론의 반대에 반나절 만에 대리청정을 거둔 경종.

3일 뒤인 10월 13일 또다시 떨어진 대리청정 명령, 이때 노론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실 왕에게 대리청정을 요구하는 건 큰 정치적 부당이 따르는 행위입니다. 노른은 직접 상소를 올리는 대신,  오늘날 감찰부와 같은 사헌부 핵심 관원을 통해 상소를 올린 거에요. 그런데 조정의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노론도 일단 만류하는 시늉을 한 것.
그런데 두번째 대리청정 명령이 내려지고 4일 지난 1721년 10월 17일 밤,  경종이 은밀하게 만난 누군가가 있습니다. 




소론 조태구의 입궐 소식에 황급히 경종을 찾아간 노론.  경종을 만나고 난 뒤 조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갑자기 또다시 대리청정을 취소한 걸까요? 조태구와의 만남 이후 대리청정 명을 거둔 경종.
노론의 승부수였던 연잉군의 대리청정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 그런데 대리청정을 거두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경종의 어명.



왕권을 위협하고 역심을 품은 4명의 흉악한 신하들 사흉.  대리청정 논쟁 이후 갑자기 돌변한 경종?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영의정 김창집, 판중추부사 조태채, 연잉군을 앞세워 왕을 몰아세운 노론에 대한 경종의 대반격, 





부전자전, 호랑이 같은 모습으로 단숨에 신하들을 제압한 경종, 왕세제 연잉군을 앞세워 왕권 교체를  기도한 역모자로 지목된 사흉, 그결과  파직되고 유배형을 보냅니다. 
심지어 주요 관직을 차지하고 있던 노론 세력이 모조리 삭탈관직됩니다.  그렇게 제거된 노론 대신들의 자리를 꿰찬 소론 세력.

경종의 과감한 결단으로 한순간에 몰락한 노론.




신축환국, 1721년 신축년에 노론에서 소론으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죠. 경종윽 확실한 자기 세력을 얻을 때까지,  때를 기다리며 엎드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리청정 사건으로 명분을 얻은 뒤, 순식간에 환국을 단행한 경종.

신축환국 이후 반쪽짜리 왕에서 온전한 왕이 된 경종. 신축환국이 일어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경종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든  문제적 상소가 나타납니다. 



이 말은 곧 경종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경종을 없애려고 시도한 사람들의 정체는?

숙종이 사망하기 전 세자 경종을 죽이려고 시도한 노론 세력,  노론 세력이 세자 경종을 암살하기 위해 세운 계획은? 




삼급수입니다. 
대급수는 자객을 침투시켜서 경종을 직접 시해한다. 소급수는 상궁을 통해서 음식에 독약을 넣는다. 마지막 방법은 평지수, 숙종의 유언을 위조해서 세자를 쫓아낸다. 

삼급수의 내용을 알게 된 경종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가급적 몸을 낮추고 있다가, 분노가 폭발하며 가차없이 칼을 뽑아든 경종.



사흉을 포함해 약 60명의 노론 신하를 처참하게 처형했죠.  경종 2년 피바람을 몰고 온 이 사건, 임인옥사!!

1722년 노론의 경종 암살 계획이 밝혀지면서 일어난 옥사입니다.  경종을 위협하던 노론이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된 것.  그 병약했던 경종이 이때는 그렇게 펄펄했다고 하죠?

재위 기간 내내 병약했던 경종이 가장 건강했던 때가 임인옥사 시기입니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화가 분출된 것은 아닐까요?

달라진 경종의 모습을 보며 가장 두려움에 떨었을 사람은?



위기를 느끼고 곧바로 경종을 찾아간 연잉군, 


눈물로 하소연하는 연잉군에게 경종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연잉군의 왕세제 자리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연잉군을 그대로 두겠다는 뜻밖의 선언을 한 경종. 

경종은 왜 연잉군을 내치지 않은 건가요?
경종도 마음으로는 연잉군이 미울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후계자에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잖아요.  연잉군 대신 양자를 들여 후계자로 삼는다면 조정이 더욱 혼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죠. 개인적 감정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우선시 한 것. 





더이상 그일을 논하지 말라고 합니다. 

임인옥사 발생 2년 후 1724년 8월 2일,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 극심한 무더위에 입맛을 잃어버린 경종.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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