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현종은 유능했지만, 하려는 정책이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그때 만난게 양귀비임, 그이후로 나랏일을 소홀히 하게 됨.
-당나라 시인 백거이 장한가 중.
단단히 양귀비에게 마음을 뺏긴 현종, 양귀비와 온천을 하며 국정에 소홀해졌고,
현종의 형의 옥피리를 부는 양귀비를 목격했고, 양귀비가 다른 남자의 피리를 부는걸 보게 된 현종.
그렇게 양귀비를 궁 밖으로 쫓아내는데... 현종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양귀비 행동은?
당시 머리카락은 몸과 같은 의미죠. 양귀비는 현종에게 목숨 건 애정을 표현함.
양귀비를 다시 궁으로 데려온 현종.
양귀비에게 매혹된 현종.
이 틈을 타 국정에 간섭하기 시작한 간신들. 그렇게 당 제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하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죠.
살아남기 위한 양귀비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은?
그런데 당나라 752년, 당나라의 재상 이임보가 사망합니다.
재상은 황제를 보좌하여 국정을 총괄하던 최고위 대신이죠.
공석이 된 재상 자리에 6촌 양국총을 추천합니다. 자신에게 부리한 말을 막을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조정의 실권을 손에 쥔 양국충. 양국충에게 정무를 맡기고 현종은 국정에서 멀어집니다.
파벌을 만들며 사리사욕과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권력 유착을 통해 나라를 뒤흔들게 되는데..
권세의 중심에 선 양 씨가문.
양귀비의 세번째 생존 존략은?!
양귀비는 현종이 아끼는 장수를 자기 사람으로 포섭을 합니다.
양귀비의 이 전략은 비극적 파국을 자초하게 되는데... 비극의 시작이 된 인물은?
말을 탈 땐, 늘어진 배 전용 안장을 추가.
현종이 안록산을 아꼈던 이유는?
당나라 영토가 크게 넓어지면서 국경의 방어가 중요해졌는데, 국경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현종이 재편한 체제가 절도사입니다.
바로 절도사!!
황제가 파견한 지방 군사령관으로 국경 방어와 군대 지휘를 맡는다.
지방 최고 권력자가 된 절도사, 변방 방어로 공을 세운 안록산.
742년 이후 안록산은 동북 3개 절도사를 장악합니다. 나라를 방위하는 핵심 군사 자산.
절도사로서 현종의 신임을 받았던 안록산.
그의 또 다른 특급 비결은?
첫 만남에 호선무를 췄고, 거구임에도 바람처럼 날쌨다고, 그 모습에 흠뻑 빠진 현종과 양귀비.
현종의 신임을 얻은 후 막강해진 안록산의 권위. 다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펼치는 양귀비.
안록산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16살 많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양아들로 삼아요?!
총애를 등에 업고 안록산의 권위는 점점 커지면서 양국충의 재상 자리까지 위협합니다.
그렇게 양아들 전략은 비극의 단초가 되어버립니다.
양국충은 막강한 힘을 키우던 안록산을 잠재적 반역자로 의심하는데..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절도사 체제, 국경을 지키는 군사 지휘관으로 군대뿐 아니라, 행정과 재정까지 장악함.
각 지역을 장악한 군벌로 변질됩니다. 지방의 왕처럼 군림합니다.
그렇게 통제 불능이었던 절도사, 대규모 반란으로 터질 수 있는 화약고 였던 것.
양국충은 안록산 제거 작전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선제공격에 나선 안록산.
절도사 휘하에 15만 병력을 이끌고 반란을 개시합니다.
당 제국 몰락의 시작인 안록산의 난.
당나라 절도사 안록산이 간신 양구충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일으킨 대규모 반란입니다.
그렇게 반란군의 표적이 된 장안의 양국충과 양귀비.
양귀비는 나라를 흔들 실권이 없었지만, 외척 세력 부패의 책임을 진 셈.
안록산의 군대는 양국충과 그 일가의 축출을 목표로 장안으로 진격합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당나라.
현정과 양귀비는 반란군을 피해 수도를 떠나 사천 지역으로 피난을 갑니다.
모든 것을 잃고 피난길에 오른 현종의 처량함...
피난으로 군대는 지쳐갔고, 병사들의 이탈이 이어지며 결국 남은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병사들은 당나라 몰락의 책임을 물으며 양귀비의 처형을 요구했고, 현종은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지자 양귀비를 처형하라 명령합니다.
현종의 명령에 양귀비는 작은 불당에서 예불을 올린 뒤, 긴 비단천을 배나무에 걸고 자결로 생을 마감합니다.
756년 7월 15일 당시 37세의 나이였던 양귀비.
양귀비를 떠나보낸 현종은 상심이 깊었는데, 훗날 당 숙종인 아들에게 모든 권력을 넘긴 다음, 양귀비를 매우 그리워했다고 함.
전쟁이 끝난 뒤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당나라,
양귀비의 무덤에서 양귀비가 지니고 다닌 향낭을 발견, 사무치는 그리움에 양귀비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지시했다고 함. 초상화를 끌어안은채 지냈다고 함.
각 지방 절도사들이 권력을 장악하며 왕처럼 군림했고, 이에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세금은 줄고 국고는 바닥이 나자 국가가 소금 등을 독점하며 재정을 마련함.
부패와 착취가 늘며 백성들의 삶은 점차 황폐화됨.
황소의 난.
중국 당나라 말기, 환관들의 횡포와 농민 수탈로 인해 소금밀매업자 황소가 일으킨 대규모 농민 반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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